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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시인이 꿈이었던 김남준에서 방탄소년단 RM이 되기까지

by BaeBora 2021.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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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꿈이었던 소년, 김남준

방탄소년단 BTS의 리더 RM, 김남준은 여의도에서 태어나 상도동에서 4살까지 살다가 일산으로 이사를 갔다. 김남준의 이름은 남한의 준수하고 걸출한 사람이 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릴 적부터 무척이나 똘똘했고, 약간 애늙은이 같은 면모도 있었다고 한다.  삶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을 많이 하는 시인이 꿈인 소년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나이에 맞지 않은 감수성으로 시를 쓰는 것이 취미였다.

IQ 148 일산 똘똘이 우등생

교육열이 높은 동네에서 자란 알엠은 학창 시절 동안 무려 40~50군데의 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부모님 모두가 학구열이 높으셔서 부모님은 아들이 커서 변호사가 되길 바라셨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나중에 성공하려면 일단 네가 공부를 해야 선택을 할 수 있다. 나중에 꿈이 생겼을 때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항상 말씀하셨다고 한다. 
두뇌가 비상했던 알엠은 중학교 2학년 때 독학으로 공부한 토익점수가 무려 850점, 중 3 때는 텝스 797점을 맞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특출 난 영어실력은 부모님이 사다가 주신 미드 프렌즈 DVD를 보며 혼자서 공부한 결과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검사했던 IQ는 148로 멘사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반에서 항상 1등을 했으며, 모의고사에서는 1.3프로. 전국 5000등 안에 드는 수재였다. 
당시 성적으로 경쟁하던 친구가 서울대 경제학과를 붙을 정도였다고 하며,  남준은 집이 가까운 연세대학교나 성균관대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힙합 유망주에서 빅히트 1호 연습생으로

알엠의 힙합사랑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에픽하이의 Fly를 듣고 큰 충격을 받고 시 대신 랩 가사에 자신의 생각을 담기 시작했고, 중학생인 어린 나이부터 힙합 유망주로 인터넷에 이름을 알렸다. 그리하여 알엠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직접 만든 랩을 알리며 활동을 했는데 2010년 랩 본선대회에서 슬리피가 우연히 알엠의 랩을 듣게 되었는데, 그 실력에  너무 놀라 알엠의 연락처를 받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빅히트 방시혁 프로듀서에게 김남준을 소개해주었다.
남준의 랩 실력을 본 방시혁 피디는 "랩 괴물"이라고 말하며 그를 중심으로 힙합 그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당시 유명했던 래퍼들을 모아 연습을 시작했지만 이후 힙합그룹에서 아이돌 그룹으로 노선을 변경하게 되었으며, 결국 김남준을 제외한 모든 연습생들은 회사를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알엠만이 유일하게 회사에 남은 멤버가 되었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의 최초 멤버, 빅히트 1호 연습생이 되었다. 

리더십을 발휘하다.

알엠은 아이돌과 래퍼 사이의 경계에서 큰 혼란을 느꼈으나 빅히트 중심 멤버답게 연습생들을 단합시키는 멤버였다. 연습생 친구들을 모아놓고 "우리는 무조건 데뷔를 하자. 누가 먼저 데뷔를 하더라도 선의의 경쟁을 해서 다 같이 성공하자."라고 다독여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모든 면에서 리더십이 넘치고 실력까지 겸비한 당시의 랩몬스터, 랩몬을 보고 한눈에 반한 정국은 랩몬을 따라 7개의 기획사의 제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빅히트에 들어올 정도였다. 또한 제이홉이 회사를 나갔을 때에도 회사를 설득해 다시 데려온 사람이 알엠이었다고 한다. 

힘들었던 연습생 시절

알엠은 연습생 시절 연습 중간에 화장실에 간다고 말하고, 중간에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두 입 만에 흡입하고 온다거나, 방탄 멤버 뷔와 함께 몰래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회사 사람과 마주쳐 아이스크림을 주머니에 넣어버렸다가 다시 꺼내먹은 등의 일화에서 보이듯이 혹독한 다이어트로 고생하기도 하였으며, 춤추는 것이 너무 힘들고 하기 싫어서 래퍼가 왜 춤을 춰야 되는지 반항도 했었다고 한다.  춤 때문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가 아버지에게 붙들려 돌아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좁은 숙소에서 끼어 살면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결국 데뷔할 날을 맞이하게 된다.

방탄소년단의 데뷔, 그리고 화양연화

2013년, 김남준은 랩몬스터(Rap Monster)라는 예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랩몬스터가 7명의 멤버들 중에서 가장 먼저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RM은 데뷔 후에도 아이돌과 힙합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방탄소년단의 데뷔 초 콘셉트는 사회비판적이고 반항적인 노래가 주를 이루었으며, 경쟁이 치열한 아이돌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녹록지 않았다.
더구나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중소 기획사 출신 아이돌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후 콘셉트를 완전히 바꾸어 소년들의 청춘을 담은 화양연화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고, 비로소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다.

랩몬스터에서 RM으로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를 전달하다.

랩몬스터의 가사 또한 더욱 은유적이고 아름다운 내용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2017년 강하기만 했던 음악적 이미지를 벗고 더 넓은 스펙트럼을 담은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5년 동안 사용했던 랩몬스터라는 예명을 버리고 'RM'으로 새롭게 예명을 바꿔 활동하게 된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담은 메시지는 한국을 넘어 해외까지 전달되고 많은 청춘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게 된다. 이후 2018년에는 유니세프와 함께 Love My Self 캠페인을 진행하여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각종 인터뷰, 시상 소감 등에서 해외 팬들에게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뿐 아니라, RM은 하루 4시간도 자지 못하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릴 나스 엑스 등 수많은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컬래버레이션과 함께 고퀄리티의 믹스테이프를 꾸준히 내주면서 팬들 아미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음악, 미술 등 예술의 발전을 위해 공헌하는 아티스트로 성장

그리고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서울 삼성학교에 음악교육에 써달라며 1억 원 기부하고,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아 국립현대미술관에 미술책 보급을 위한 1억 원을 기부하는 등 예술의 발전을 위해 사회에 도움을 주는 아티스트로 성장하게 된다.   
이제는 내는 곡마다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는 우주 대스타, 슈퍼스타가 된 방탄소년단 BTS의 리더 RM, 더욱 아름다운 가사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오래오래 주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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